의도된 사실들

대학교 2학년 때였던가, 학교에서 하는 수업 중 “사진 예술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때 당시 유명 포털 메인에 담당 교수님 이름으로 특집 연재 칼럼도 만들어져있을 정도로 유명한 교수님이 진행하는 수업이고, 2학점짜리 교양수업이라 학점에 대한 부담도 적었던 탓인지 이 수업의 인기는 꽤나 높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유명한 수업 수강 신청을 제대로 성공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이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예외적인 일 처럼 느껴진다.

사진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나는 일단 중고 미놀타 수동 카메라를 들고 기말 포트폴리오 과제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녔다. 여의도, 노량진 수산시장, 살던 기숙사 앞, 서강대교 등이 지금도 기억나는 장소다. 나는 그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여러 것들을 찍었다. 대부분의 사진들은 그 자리에 놓여있는 어떤 사물의 찰나, 혹은 우연성의 산물이었다. 나는 그런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나의 사진에 담아 하나의 의미로 묶었다. 지금도 그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지만, 펴보면 ‘시공간이 오그라들것 같은’, ‘중2병스러운 이야기’들이 꽤나 튀어나온다.

솔직히 수준미달의 결과물이지만 마지막 과제 발표날 재수 좋게도 발표 기회를 잡은 나는 내 사진들을 열심히 미화하고 포장해서 교수님과 조교, 같은 수강생들에게 설명했다. 그 어줍잖은 포장이 통했는지 내 성적은 놀랍게도 A- 였다.

오해하지 말길. 내 성적을 자랑하고자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 발표날, 모든 발표자들의 결과물에 대한 발표를 다 들은 교수님의 평이 기억에 계속 남는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정확히 옮길 수는 없으나 요지는 이러했다. ‘최근 사진 기술의 발전과 취미 생활의 보급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가진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쉽게 접하고 일상생활에서 함께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진이라는 것이 순간, 우연성에만 집중되고, 일상을 공유하는 요소만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쉽다. 특히 이런 사진 관련된 수업에서도 결과물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일상에서 찾아낸 요소들에 대한 의미 부여가 많은데,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의도를 지니고 만들어진 사진이 많다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있다.’ 는 것이었다.

사실 난 그 당시 교수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을지 몰라도 명확히 인지하고 공감하지 못했다. 주변의 일상성 같은 우연함, 이를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라는 의구심을 품었다.

하지만 7-8년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이 말에 철저하게 공감하고 있다. 나는 그저 그럴듯해 보이려고 하는 것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하나의 주제를 생각해놓고 그저 거기에 맞을 것 같은 그리고 멋있어 보일 것 같은 소재들을 그저 끼워 맞췄을 뿐이다. 교수님에게는 그것이 보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도 보이는 그런 어설픈 요소들이 그에게 안보였을리가 없다.

우리는 일상을 이야기한다는 미명하에 너무나도 일차원적인 것들을 쏟아내고있다. 그 의도는 너무나 단순하고 일차원적이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건 예술이 해야할 일과는 거리가 있다. 의도된 사실들이 필요하다. 그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우연성에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의도를 가지고 표현해야한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표현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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