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4] 디아블로3:대악마판; Of the, by the, for the ITEM

북미 PSN에서 할인해서 덜컥 사긴 했지만, 사실 Diablo 3( 이하 ‘디아블로3’)를 플레이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대악마판이 나오기 전에 (PC버전) 디아블로3 오리지널을 친구와 함께 PC방에서 하면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죠.

저는 반복적으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해야 하는 게임을 정말 싫어합니다. 레벨 노가다. 아이템 노가다 등으로 말할 수 있는 노가다 요소가 있는 게임은 정말 정이 가질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디스가이아… SRPG 좀 진득하게 하고 싶은데, 진행이 안될정도로 노가다를 시켜대니…) 그런 저에게 아이템 파밍이 주된 목적이라고 정평이 나있는 디아블로3는 뭐랄까.. 망할게 확실한 도전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디아블로1이 나왔을 때만 해도, 이 게임의 본질이 아이템 파밍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저는 디아블로1이 가지고 있는 실시간 전투, 다양하고 화려한 스킬, 음습하게 잘 표현된 던전의 분위기 등에 매력을 느껴서 엔딩까지 보았습니다.

ButcherRoom
아직도 기억에 남는 디아블로1의 Butcher’s Room

이후 디아블로2, 특히 카우레벨이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때도 디아블로2를 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렇게 즐겁게 플레이하지는 않았습니다. 디아블로1에서 느낀 분위기나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죠.

785-01
디아블로2의 최고 인기 요소, 카우레벨

디아블로3는 1보다는 2에 가깝습니다. 2에서 인기있던 요소들을 극대화하고 불편했던 요소들을 개선한 후속작이죠. 그렇기 때문에 1에서 기대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블리자드의 목표는 명확해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유저들이 편하게 학살을 하고 아이템을 모을 수 있게 해줄까” 입니다.

디아블로3의 모든 것은 아이템을 향해 있습니다. 제가 이 포스팅의 제목을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문에서 따온 것도 그만큼 이 게임에서 아이템이 갖는 의미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스킬이나 능력치 스탯 배분을 없앴기 때문에 캐릭터 성장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타운포탈도 무한으로 쓸 수 있습니다. 아이템 identify에도 그 어떤 제약이 없기 때문에 마을로 왔다갔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상점에서 이런저런 아이템들을 팔기는 하지만 그거 사면 바보입니다. 밖에 나가서 줏어 쓰세요. 상인은 전혀 필요없는 존재에요. 그저 플레이어는 적들을 학살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심지어 스토리도 신경쓸 필요가 없죠;; 저는 이렇게 스토리가 기억에 남지 않는 게임 오랜만에 해보는 것 같습니다. Act 5까지 깨고 난 뒤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디아블로 잡았네.. 말티엘 잡았네.. ” 그리고 끝입니다. 그만큼 스토리텔링이 좋지 않습니다만, 안 좋은 건 스토리텔링만이 아니라 스토리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참고글 : 디아블로3는 어떻게 재앙이 되었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게임상에서 천사고 악마고 혼자서 다 때려잡는 먼치킨이 되어버린 주인공을 보고 있자면 절대적으로 강한 나의 캐릭터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기 보다는 “아 천사고 악마고 다 X신인가.. 뭐하는거야..”라는 실소만 맴돌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빠르고 편한 게임이 되다 보니, 개발자들이 아무리 필드나 던전의 배경을 신경써서 만들고 몹들을 신경써서 만들었다고 해도 (Act도 5개나 되고 몹들 종류도 많은 것 같으니 실제로 신경을 쓰긴 썼겠죠?) 전혀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그냥 배경1,2,3,4,5 / 몹1,2,3,4,5 일 뿐입니다. 디아블로2에서만 해도 Act에서 다른 Act로 넘어갈 때 새로운 배경과 몹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3에서는 그런 거 없습니다. 특히 디아블로1은 몹들의 공격스타일에 따라 플레이어가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3는 그런 거 없습니다. 몹들은 그저 외관이 조금 다른, 썰어야할 고깃덩어리일 뿐이죠. (일반적으로 기본스킬이 장착되어있는) X버튼만 연타하면됩니다. (연타이야기가 나와서말인데 .. 간단한 팁을 드리자면 버튼은 누르고만 있어도 스킬이 연속으로 나갑니다. 연타할 필요 없어요. 저는 이거 레벨 70찍고 나서야 알았네요…)

그러나 이건 밸런스나 게임 시스템 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의 문제죠. 디아블로3는 블리자드는 게이머가 가장 쾌적하게 아이템 파밍을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디아블로3는 디아블로1이나 2가 나왔을 때 처럼 게임계에 획을 그을만한 훌륭한 게임이 절대 될 수가 없습니다. 명작반열에 오를 일도 절대 없겠죠.

그렇다면, 디아블로3는 플레이할만한 가치가 없는 재미없는 게임인 것일까요?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디아블로3는 꽤나 재미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아이템에만 올인한 블리자드의 열정은 아이템 모으는 재미만큼은 엄청난 게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아이템 파밍계의 장인정신이라 할 만합니다.

Diablo III: Reaper of Souls – Ultimate Evil Edition_20150115153707
종류 별로, 모아야 할 아이템이 산더미다.

앞서 말했듯이 스탯과 스킬 테크트리등을 없애고, 스킬&룬, 패시브스킬 선택적용 시스템을 채택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캐릭터를 자기 입맛에 맞게 적용할 수 있게끔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캐’는 절대 나올 수 없어졌죠. 특히 룬 시스템은 참 재미있는게 스킬 종류자체는 매우 적음에도 각 스킬마다 룬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게끔 하여 스킬 종류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게끔 하였습니다. 그것 참 훌륭하고 효율적인 선택눈속임?이라고 느껴집니다.

Diablo III: Reaper of Souls – Ultimate Evil Edition_20150115153650
4개의 스킬인듯 하지만 각 스킬마다 룬이 5개씩 있어서 20개의 각기 다른 스킬이 되는 굉장히 효율적인 시스템

아이템 색을 바꾸는 것도 너무나 쉬워져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없음에도 자신만의 캐릭터 개성을 뽐낼 수 있는 방법이 생겼고 (어차피 아이템으로 가리면 캐릭터 얼굴 안보이니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하지 말고 아이템 커스터마이징을 해라! 크.. 엄청난 아이템파밍 장인정신..) 아이템에 보석을 박고, 빼는 것도 쉬워졌고(돈만 있다면..) 더 나아가서 아이템에 부여된 능력치도 변경 가능하게끔 하였습니다. Adventure 모드에 들어가면 아이템 뽑기도 할 수 있고, 다양한 재료를 모아서 아이템 제작도 할 수 있고.. 진짜 종합 아이템 선물세트 같은 게임입니다.

Diablo III: Reaper of Souls – Ultimate Evil Edition_20150115153533
캐릭터 얼굴을 가리면 어차피 아무것도 안보인다. 하지만 아이템은 영원하다.

가장 놀라운 요소는 난이도 조정에 있습니다. 보통 게임들은 난이도 조정을 게임 시작시에 고르고 엔딩전까지 바꾸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만, 디아블로3는 다릅니다. 난이도를 10개로 세분화하여 플레이어가 원하는대로 바꾸면서 플레이하면 됩니다. 재시작도 필요없습니다. 그냥 Change Difficulty 로 들어가서 원하는 난이도를 선택하면 바로 적용됩니다. 플레이어가 원하는 수준에 철저하게 맞춰주려는 블리자드의 노력이 가장 잘 보이는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Diablo III: Reaper of Souls – Ultimate Evil Edition_20150115153612
난이도가 5개씩이나?
Diablo III: Reaper of Souls – Ultimate Evil Edition_20150115153628
5개 받고 5개 더.

디아블로3의 아이템 파밍이 갖는 매력은 리모트 플레이를 만나면서 극대화 됩니다. PSVita로 침대에 누워 자기 전에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매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실제로 스토리 모드의 난이도가 어렵지 않은 수준이고,(어려우면 난이도 낮추시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모드는 튜토리얼이라고 하기 때문에… 리모트플레이로 짬짬히 스토리를 다 깨고 좀 더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Adventure Mode는 PS4로 직접하는 방법은 꽤나 좋은 선택입니다. 실제로 저도 스토리 모드는 리모트플레이로 한 시간이 더 깁니다.

일반적으로 리모트플레이시 조준과 후면터치의 문제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디아블로3는 FPS처럼 정밀 조준이 필요치 않고 타 쿼터뷰, 탑뷰 게임들처럼 오른쪽 스틱으로 조준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PSVita로 조작해도 크게 불편함이 없습니다. R2에 배정하는 스킬들은 쿨다운이 길거나 가끔 쓰는 스킬로 해놓으면 후면터치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거의 없구요.(L2는 타겟고정입니다.) 이렇게 리모트플레이에 좋은 게임은 지금까지 보질 못했습니다. 이렇게 좋은걸 왜 블리자드는 처음에 안한다고 땡깡부렸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제 막 Adventure Mode에 들어왔고 막 70 만렙을 찍었습니다. 아직도 (아이템에 관해서는)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어 보이고 다른 캐릭터들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클래스로 스토리 모드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과연 언제쯤 디아블로3에 질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적당한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Diablo III: Reaper of Souls – Ultimate Evil Edition_20150115153713
70레벨 이후에도 Paragon 레벨이 있어서 사실 레벨은 무한대로 발산한다.

디아블로4가 만들어질지, 만들어진다면 3와 같은 방향으로 만들어질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게임의 본질은 역시 재미이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재미’만’ 있는 게임보다는 좀 더 훌륭한 게임을 보고 싶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