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4] The Evil Within : 반복 Within

호러게임이 힘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더 이상 플레이어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아지는 때 찾아옵니다. 자신이 조종하고 있는 분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되는 순간 호러게임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죠. 그건 ‘데드스페이스 1’ 초반에 힘없던 아이작이  ‘데드스페이스 3’에서 공구전사 아이작(aka 네크로모프 학살자)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공포에서 오는 매력이 없어지는 것이죠. ‘화이트데이’에서 공포의 대상이던 경비 아저씨가 어느 순간부터 그저 농락의 대상이 되는 것도 한 예가 되겠네요.

수 없이 농락당한 경비아저씨의 엉덩이....
수 없이 농락당한 경비 아저씨의 엉덩이….

(이미지출처)

The Evil Within (이하 ‘이블위딘’)은 그런 의미에서 호러게임으로서의 힘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처음부터 끝까지 플레이어에게 죽기만을 강요하기 때문이죠. 플레이어의 조그마한 실수, 판단착오로 죽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면 대부분 죽습니다. 즉, 2회차 이상의 플레이를 하고 있는 플레이어거나 공략집을 보지 않고 하는 플레이어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죽음이 너무나도 쉽게 반복된다면 처음 한두번은 ‘어 깜짝이야!’ 라는 반응을 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해탈하게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제가 엔딩을 보지 못하고 하다가 무서워서 포기한 데드스페이스1이 진행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물론 좀 더 오래 했다면 데드스페이스 역시 두렵지 않아지는 순간이 있었겠죠) ‘이 앞에 뭐가 있을지 모르겠어… 덜덜… 으어! 네크로모프다! 으어 죽여! (…전투..) 와 살았다.. 깜짝 놀랐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차 데드스페이스가 제공하는 공포에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플레이를 포기하기 전까지는 1  이런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느끼면서 플레이하였습니다.

잘만든 호러게임. 데드스페이스1
잘만든 호러게임. 데드스페이스1

하지만 이블위딘은 챕터 2~3 정도만 되어도 죽음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이 앞에 뭐가 있을지 모르겠어.. 일단 가서 봐야지..아! 죽었다. 이번엔 조심해서 가야지. 총알 아껴야 되니까.’ 이런 마음 뿐입니다. 아니면, ‘아 에너지 달았다. 그냥 죽자.’ 이런 마음이죠. 그러므로 호러게임으로서의 이블위딘은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무섭다기 보다는 징그러움과 고어만이 가득할 뿐이죠.

아 한번만 덜 죽었어도 100번인데...
아 한번만 덜 죽었어도 100번인데…

이블위딘이 무섭지 않은 이유에는 이 게임이 가진 문법적 특색도 있습니다. 이블위딘은 게임의 문법을 너무나 잘 지킨 게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렵지 않죠.  예를 들어, 전투가 있기 전에는 보급품을 채울 수 있는 곳이 항상 있습니다. 그리고 특정 무기의 탄약(혹은 석궁)을 보스전 전에 제공하면 그 무기로 보스의 약점을 공략하면 됩니다. 스토리상 가야 할 것처럼 보이는 곳을 가기 전에 항상 다른 곳을 둘러보면 숨겨진 아이템들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생각치 못한 방식으로 놀라게 하거나 두렵게 해야 효과적일텐데 조금만 플레이해보면 이블위딘의 게임 특성은 금방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 게임이 제공하는 공포에 쉽게 익숙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이블위딘에 실망한 부분은 ‘공간’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호러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러게임이라면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탐험하면서 그리고 그 공간을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얻는 공포와 성취감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말 잘 표현한 게임 중 하나가 데드스페이스1 (1입니다 1.)이라고 생각하고요.

데드스페이스1에서 아이작이 비행선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 (연락두절된 애인), 빠져나가야만 하는 이유 등이 매우 명확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 해야할 것들도 플레이어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요소들이죠. (엔진 가동을 위한 배터리 교체 등등) 그리고 각 챕터마다 만들어져 있는 공간은 일직선으로 이동하는 공간이 아닌 여러번 왔다갔다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해결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처음에는 미지의 공간이었다가 여러번 이동하면서 익숙해지고 익숙해질 때쯤이면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미지의 공간처럼 느껴지는 그런 곳. 새삼 느끼지만 그런 ‘공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데드’스페이스’는 정말 잘 만들어진 호러 게임입니다.

공간을 잘 구성한 데드스페이스1
공간을 잘 구성한 데드스페이스1

(이미지출처)

적어도 미카미 신지 2의 히트작인 ‘바이오하자드’는 이런 ‘공간’을 잘 만들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이블위딘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지금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알 필요가 전혀 없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추억보정일 수 있지만)바이오하자드의 맨션은 기억에 남는 공간이다.
(추억보정일 수 있지만) 바이오하자드의 맨션은 기억에 남는’ 공간’이다.

(이미지출처)

앞에서 ‘호러게임’으로서 이블위딘이 실패했다는 것을 말했는데 방금 언급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는 부분과 연결해서 ‘일반적인 게임’으로서의 이블위딘이 실패한 이유도 말해볼까 합니다. 플레이어가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굉장히 치명적입니다. 몰입감을 현저히 감소시키기 때문이죠. 이블위딘에서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저 캐릭터가 왜 여기 있고, 왜 저 문 너머로 가야하고, 왜 내가 저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굉장히 추상적인 컷신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갑자기 주인공이 하늘을 날아서 3 새로운 장소가 짠!하고 나타나는데 이런 게임 구성 속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맞닥뜨린 현재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기 힘듭니다.

물론 혹자는 이런 불명확한 목표나 상황이 이블위딘의 스토리가 ‘정신’, ‘환영’ 등과 같이 추상적인 부분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이라고 하거나, 모호성과 불확실성에서 오는 열린 스토리텔링을 채용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해버리기엔 이블위딘의 연출은 너무 정신없고, 목적을 알 수 없는 전진과 해결만이 난무합니다. 총 챕터 15중 10쯤이 되어야 대강이나마 스토리의 윤곽을 알 수 있지만, 그것도 이내 다시 뒤죽박죽 되어버립니다.

이게 다 뇌 때문이다.
이게 다 뇌 때문이다.

게임 중간중간 나오는 퍼즐 비슷한 것들은 퍼즐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대부분 주위만 조금 잘 둘러보면 답을 바로 알 수 있는 것들이며, 답을 못찾더라도 이것저것 버튼 눌러보고 몇번 죽어보면서 답을 찾으면 됩니다. 이 정도로 만들 것이었다면 차라리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게 만들거나 빼버리던지 왜 넣어서 플레이어를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눌러야 하는데...
둘 중에 하나를 눌러야 하는데…
바로 앞 벽에 답이 있다. 사실 이거 못보고 그냥 둘 중에 하나 누르고 혹시 죽으면 다음에 다른거 누르면 된다.
바로 앞 벽에 답이 있다.(스크린샷은 다른 문제의 답) 사실 못보고 그냥 둘 중에 하나 누르고 혹시 죽으면 다음에 다른거 누르면 된다.

그리고 엔딩 역시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고 그냥 흐지부지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라는 생각만 듭니다. 제작진이 후속편이나 DLC를 염두에 두고 이렇게 하였다면 매우 훌륭한 만연하는 돈벌이 방법이라고 칭찬하면서 욕도 같이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열린 결말의 매력을 뽐내고자 이렇게 만들었다면 욕 밖에 해줄 것이 없습니다. 그 무엇하나 제대로 마무리하거나 제대로 플레이어에게 전달하지 않고 게임을 마무리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합니다. 추상성과 함축성으로 승부하는 인디게임도 아니고 많은 자본이 들어가고 큰 스토리 줄기를 가지고 있는 AAA게임이 이런 구성을 갖는 것은 비판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최후의 보루로서 ‘액션게임’ 이나 ‘TPS게임’으로서 이블위딘이 가치있지는 않을까 마지막 희망을 걸어봅니다만… 그 역시 실패입니다. 애초에 호러, 서바이벌 게임을 표방하였기 때문에 보급품은 항상 부족하고 이로 인해 호쾌한 액션, TPS게임이 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더욱이 조작이 묵직하고 불편하며 AI의 움직임은 굼뜨고 어색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뭐니뭐니해도 ‘레터박스’입니다.

아.. 레터박스여...
아.. 레터박스여…

사실 저는 플레이해보기 전까지는 레터박스 자체를 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영화적 연출 혹은 기술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서 레터박스를 넣던 말든 크게 상관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플레이 해보니 그것이 이 정도로 게임의 가치를 떨어뜨릴 줄은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레터박스를 통해서 억지로 만들어낸 불편함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위적인 공포감을 문제점으로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도 이 게임의 특색이라고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터박스로 인해서 시야가 좁아져서 제작자가 만든 게임의 연출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치명적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어느 지역으로 넘어가니까 갑자기 화면이 흔들리고 건물이 흔들리면서 어딘가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플레이어 앞에 펼쳐진 땅이 갑자기 갈라지고 솟아오르고, 꺼지고 난리가 납니다. 좋은 연출입니다.

하지만 레터박스 때문에 이 연출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면????

itDidHappen

세상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있겠습니까…. 이블위딘의 레터박스는 정말 치명적인 오점입니다.

 

아래에는 소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적인 것은 아니고 연출과 마지막 보스 전투와 관련된 것인데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긴해요…

 

 

 

그리고 슈팅게임으로서의 가장 큰 촌극은 마지막 보스와의 전투일 것입니다. 힘들게 힘들게 많은 전투와 여러 스테이지를 거쳐서 왔더니 마지막 보스와의 전투는 전투라기 보다는 뛰어다니는 횡스크롤게임 같고 (그것도 아주 쉬운), 조금 지나니 아무 생각없이 머신건을 쏘면 되고, 최종 마무리는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겠는 우연히 주운 로켓런처로 하다니…. 저는 실소를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냥 쏘면 된다..
그냥 쏘면 된다..
뜻밖의 로켓런처??
뜻밖의 로켓런처??

이런 큰 문제들 외에 게임의 자잘한 요소들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먼저 그래픽 자체는 좋다고 말할 수 는 없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 딱히 그래픽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면서 플레이에 집중하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PS4로 넘어오면서 더욱 더 좋은 그래픽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저도 그렇고), 이 정도의 그래픽이라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나쁘진 않습니다.
뭐 나쁘진 않습니다.

또한 로딩화면에서 게임 플레이에 관한 팁을 보여주면서 플레이어의 진입장벽을 낮춰주기도 합니다. 게임 초반의 튜토리얼이 (요새 게임들 답지 않게) 친절한 편은 아니고, 자세한 조작법이나 팁을 일시정지 메뉴에서 항목별 텍스트로 제공하기 때문에 (저처럼 게으르고 수동적인 게이머들은) 잘 안보게 되는 점을 감안한다면 로딩화면의 팁은 꽤나 유용합니다.

나름 친절합니다.
나름 친절합니다.

그리고 클리어하면 클리어 특전으로 여러 아이템을 주면서 반복플레이를 권장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며, 이는 과거부터 계속되던 일본게임의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이 머신건이 쓰일 일은 없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이 머신건이 쓰일 일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블위딘은 호러게임, 슈팅게임, 일반적인게임 그 어떤 쪽에서도 저를 만족시키지 못한 안타까운 게임입니다. 게임을 17시간 가량이나 플레이 했는데도 제 기억에 남은 것은 반복적인 죽음과 수 많은 피, 고어적인 연출 뿐입니다. 플레이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신들이 만족시키고 싶은 유형의 플레이어에게 좀 더 집중해서 게임을 만들었다면 이렇게 이도저도 아닌 게임이 나오진 않았을 것 같네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Notes:

  1. 데드스페이스1의 총챕터가 12챕터인데 제 기억에 제가 중간 6~7챕터까지 하다가 플레이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2. 이블위딘의 프로듀서
  3. 실제로 바닥이 꺼지면서 주인공이 떨어지는데 다시 새로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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