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 15.4.3. Berlin_Day 5

감정적으로 여행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 하루였다.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었다. 떠날 때는 나는 남들과는 다른, 일반적인 관광객처럼 관광지나 돌아다니면서 사진찍는 것이 아닌, 좀 더 현지인처럼 그 도시를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을 할 것이라 자신만만하게 왔는데 막상 나는 다른 관광객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관광객처럼 유명한 관광지도 가고, 현지인 코스프레도 하고 이것저것 다하려다가 그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멍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엔 부활절 주간, 숙소 취소 등의 문제가 섞인 것도 있는 것 같다.

이런 멍함을 느끼고 자책을 하다가, 그래도 이게 혼자하는 첫 여행인데 어쩌겠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없으니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겠다고, 내일의 동선을 짜는 것에 보다 집중해야겠다고 말이다.

아래서부터는 하루의 반추>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Alexander Plaza로 출발했다.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곳들 보다 전반적으로 관광객이 많은 느낌이 들었다. 뮤지엄패스를 사면서 받은 박물관 정보를 보면서 체크한 결과 박물관 섬에는 내가 관심가지고 볼 만한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박물관들은 패스하기로 했지만, 섬 자체는 한 번 구경해 보고 싶은 마음에 Alexander Plaza에서 박물관섬까지 걸어가 보았다.

별거 없었다… 나는 조금 더 큰 섬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그마하고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브란덴 브루크 문 앞의 많은 사람들
브란덴 브루크 문 앞의 많은 사람들

그렇게 박물관 섬을 지나서 브란덴 부르크 문, 체크포인트 찰리까지 갔는데 정말 관광객만 잔뜩 있는 별 의미 없는 공간이었다. 특히 체크포인트 찰리의 경우는 옛 동독(서독?) 스탬프를 여권에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정신 없어서 스탬프고 뭐고 빨리 그 장소를 떠나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옛 경비병 유니폼을 입은 두 사람은 경비원 옷을 입고 있지만 경비병 옷만 입었다 뿐이지 무슨 산타클로스처럼 사람들과 열심히 경례하면서 사진 찍어주고 있어서 그걸 보고 있자니 너무 슬펐다. 그 사람들이 안됐다는 감정이 아니라, 그 광경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온 감정인듯 하다.

전승기념탑까지 일자로 뻗은 길이 인상적
전승기념탑까지 일자로 뻗은 길이 인상적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꽤나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서늘했다. 매끈하게 잘린 커단란 돌들이 직각으로 교차되어있어서 미로같지 않은 미로가 되는 것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오히려 사람이 어느정도 있어서 좋았던 걸까?

 

그 돌들을 실제로 손으로 만져보니 너무나 매끈하고 단단하고 차가워서,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상한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록 지형이 낮아져서 돌 속에 잠길 수 있고, 밖으로 나올 수록 내가 돌 위로 솟아오르게 되는데 그 느낌이 뭔가 새롭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홀로코스트 기념관

홀로코스트 기념관 건너편에 있는 공원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기념물이 설치되어있다. 아주 간단한 설치물 안에 영상(동성애자 두명이 키스하는 장면)이 상영되고 있는데, 볼게 많다거나 꼭 봐야한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조용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날이 조금만 덜 춥고 조용하게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동성애에 대한 존중.
동성애에 대한 존중.

다음으로 버스를 타고 Topographic des Terros로 갔다. 옛 게슈타포 사령관이 파괴된 지역을 박물관으로 만든 곳인데, 크게 볼 것은 없었다. 사람도 많아서 좀 복잡하고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이 있긴 한데, 일일히 보기에는 정신적 피로가 좀 커서 (영어를 다 읽기도 힘들고, 개인적으로 자료 하나하나 자세히 보는 것엔 크게 관심없다보니..) 대충 훑어보고 나왔다.

IMG_5966
Topographic des Terros

Judishes Museum 은 꽤나 좋았다. 베를린에 와서 처음으로 줄서서 기다려 들어간 박물관이었는데, 사람이 많고 박물관 구조가 이상하게 느껴져서 처음에 조금 짜증이 났다. 하지만, 맵을 보고 걸어다니면서 느껴보니 박물관 구조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이나 실험성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처음에 만나는 복도가 Axis of Holokaust, Emigration, Continuity 등으로 구성되어서 열십자로 교차되고 방향성을 지니게 구성된 것에 대해 의미를 생각해보니 굉장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되었다. 관람을 하면서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 보다 건물 자체가 좋다는 생각을 해봤다.

유대인 박물관의 건물 모양. 매우 인상적이다.
유대인 박물관의 건물 모양. 매우 인상적이다.
박물관의 지도
박물관의 지도

(이미지출처)

(건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공식홈페이지에서 확인)

오기 전부터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파악했던 상설전시는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커다란 쇠붙이로 만든 얼굴모양에서 나는 차가운 쇳덩이의 소리가 굉장히 크게, 쩡쩡 차갑게 울려퍼졌다.

 

전시들 중 가장 위에 전시되어있는 유대인 역사에 대한 전시는 내가 유대인 역사에 대해 크게 관심 없다보니 빠르게 지나갔다. 전시들 중 중간에 2군데 전시된 Wall of Missing은 인상적이었다. 헤드셋을 끼고 벽주변을 돌아다니면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전시물이었는데, 실제로 체험해보면 참 기억에 남을 만한 전시다. 유대인 역사 전시들도 그렇고 이 박물관의 전반적인 전시들이 관람객이 만지고, 열어보고 하는 등의 상호작용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전시되어있는 전시물들보다 박물관 자체가 좋았다. 다만, 아무래도 나처럼 유대인=홀로코스트 라는 인상이 깊게 박혀있는 사람들에게는 집중력이 조금 떨어질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상설전시를 조금 줄이고 보다 실험적인 기획전시를 늘리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Wall of Missing
Wall of Missing

박물관을 나와서 뒷길로 좀 걷다보니 뭔가 그럴듯한 Berlinische Galerie라는 표지와 안내판이 있어서 오오오 하고 계속 따라가 봤더니 임시 휴장 중이라 좌절… 아마 컴템프러리 아트 전시를 하는 박물관인 것 같은데 아쉽다.

브란덴브루크 문 근처에 있는 Deutsche Bank Kunsthalle 는 도이치 뱅크에서 후원하는 갤러리인 듯 한데, 주로 신진작가의 전시가 기획전으로 열린다. 내가 봤던 전시는 2015 Artist of Year 전시였는데,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었지만…. 현대 예술을 좋아하면 가서 보면 좋을만한 갤러리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좀 늦은 점심을 전통 독일 음식점 같은데서 먹었는데 옆에 한국인 여자 2명이 식사하고 있더라. 오랜만에 한국어 들어서 관심이 갔는데, 계속 짜증내면서 이야기해서 내가 다 짜증났다. 직장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왜 여행까지 와서 계속 짜증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듣다보니 내가 다 짜증이 났다.

시간이 좀 남는 것 같아서 (이것 저것 많이 한 것 같은데 아직도 시간이 남았다는게 신기.) 포츠다머 스트랏세로 가서 혹시 Mall of Beriin에 쇼핑할만한 것이 있나 보려고 했는데 모두 닫아서 Fail..

그 옆에 있는 Dali Museum을 갔는데, 입장료가 너무 비싼거 같다. 뮤지엄 패스 적용도 안되고… 전시는 달리 팬이라면 좋겠지만 나는 그저 그랬다. 유명한 작품은 많지 않고, 간단하지만 다양한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나같이 달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좀 애매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림보다는 조각들이 좋았다. 지금까지 봤던 박물관의 피카소 작품들 중 조각보다는 그림이 좋았던 것과는 반대. (여행 내내 봤어도 피카소는 조각보다는 그림이 좋았다.) 박물관, 갤러리들을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좋은 것은 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애매하고 어찌보면 무관심했던 내 자신의 취향에 대해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있는 일이다.

슬슬 폰 배터리도 다 떨어지고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어서 숙소에 돌아갔다. 들어갔더니 Lusia는 오늘 밖에서 잘거라고 내일 숙소 잘 옮기라고 서로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나는 호스트를 쫒아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호스트가 집을 비워서 덕분에 빨래하고 건조하기도 편하고 내일 체크 아웃하는 등에 있어서 좀 자유가 생겨서 편해진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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