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Tyler, The Creator

타일러의 공연은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뮤지컬 같았다. 노래의 시작과 끝이 굉장히 잘 맞물려 돌아갔고, 수많은 랩가사 중에 실수라고 느껴질 만한 어색한 순간조차 하나 없었다. 공연 중간중간에 여백을 갖고, 멘트도 꽤나 하였지만 그런 순간들조차 초단위로 계산해서 공연을 준비한 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처음에는 괴짜, 자유분방함, 문제아 등의 수식어로 그와 그의 공연을 이해하려고 하였으나 이내 포기하였다. 그런 수식어로 그의 공연을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앞서 말한 이미지로 대표되는 그의 raw한 모습과는 다르게 공연은 너무나도 잘(well) 짜여져 있었다.

GigGuide.Korea: Tyler, The Creator Review : 기묘한 세계로의 짧은 여행


과거 gigguide글이 내려가서 다시 글 올립니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나름 공연을 여기저기 다녀보았지만, 그런 기묘한 광경을 보지 못했다. 공연 시작 한시간 즈음 전에 도착한 악스코리아에서는 이상한 기운이 스멀스멀 흐르고 있었다. 어찌보면 일반적인 공연 대기 중인 사람들의 모습이었지만, 그 장소는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어떤 트랜드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같았다. 관객들은 그들이 원하는 세계, 그들만의 세계로 이끌어줄 Tyler, The Creator (이하 ‘타일러’)를 색색의 옷(대부분 Golf Wang)을 입고, Vans를 신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어색한 모습으로 대기선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곧 입장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꽤나 많았음에도 입장 과정에서 큰 혼란이 없었고, 입장 후 공연장 내에서도 혼잡이 거의 없었다. 공연장으로서의 악스코리아는 흠잡을데가 없었다. 약 1,400~1,500명 이상의 사람이 들어찼음에도 냉방시설이 적절히 작동하여 관람이 쾌적했으며, 사운드 역시 깔끔했다. 어떤 장르의 음악에서 음향이 중요하지 않으리랴만은, 힙합 공연의 경우 음향이 조금 잘못 되면 저음만 잔뜩 강조되고 MC의 목소리는 퍼지면서 가사의 전달이 안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악스코리아의 사운드는 어떤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연 시작시 DJ TACO의 마이크가 잠시 나오지 않고, 그의 목소리가 약간 쪼개지는 듯한 불안한 느낌의 사운드가 잠시 들렸지만 그런 불안정함은 몇분이 지나고 나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타일러의 공연은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뮤지컬 같았다. 노래의 시작과 끝이 굉장히 잘 맞물려 돌아갔고, 수많은 랩가사 중에 실수라고 느껴질 만한 어색한 순간조차 하나 없었다. 공연 중간중간에 여백을 갖고, 멘트도 꽤나 하였지만 그런 순간들조차 초단위로 계산해서 공연을 준비한 듯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처음에는 괴짜, 자유분방함, 문제아 등의 수식어로 그와 그의 공연을 이해하려고 하였으나 이내 포기하였다. 그런 수식어로 그의 공연을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앞서 말한 이미지로 대표되는 그의 raw한 모습과는 다르게 공연은 너무나도 잘(well) 짜여져 있었다.

여러 자아와 이야기로 가사를 만들어내는 그의 노래들과 공연은 일맥상통했다. 공연에서 보여주는 각 노래마다 그는 배우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때로는 신나게, 때로는 광기 어린 소리를 지르며, 그리고 때로는 너무나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수많은 배역을 소화했다. 그의 몸짓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되는 무대의 몰입감은 뛰어났다. 무대에 완벽히 동화되어 위화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중저음이 강조된 타일러의 목소리는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또박또박 말하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딜리버리가 워낙 좋아서 배경음악이나 hype man들의 더블링에 전혀 묻히지 않고 관객들의 귀로 정확히 전달되었다. 일반적으로, 소리를 마구 질러대야하는 신나는 노래에서 조금이라도 오버페이스하게 되면 이후에 목소리가 잠긴다거나 쉬기 십상인데, 타일러의 목소리는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가 전혀 없었다. 단순히 타고난 목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그의 목소리조차도 그의 철저함과 완벽히 짜여진 듯한 공연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였다.

Trap을 기반으로 하는 빠른 비트의 곡이나 다른 신나는 곡이 흘러나왔을 때 관객의 호응이 열광적이었음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가 가진 힘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미니멀한 비트 위에 랩을 하거나 아카펠라 랩을 할 때였다. 그의 목소리가 관객들에게 강하게 전달되었던 그 조용한 순간들이 이날의 공연에서 가장 멋진 시간이었다.

물론 공연이 100% 좋은 부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장 어색했던 순간은 관객들을 모두 앉게 한 뒤에 곡의 분위기가 고조될 때 뛰면서 일어나게 할 때였는데, 딱히 신선한 방식의 퍼포먼스도 아니고 그 과정도 조금 매끄럽지 않아서 꼭 이 퍼포먼스를 해야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또한 Fuck, Bitch, Nigga 등 비속어가 판치는 가사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갖는 폭력성은 타일러의 노래에 거부감을 느끼게끔 할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그것은 취향이나 개인이 용납할 수 있는 도덕성 한계치의 문제이지 본 공연 자체에서 판단할 부분은 아니리라.

앞서 지속적으로 언급했던 뮤지컬, 연극 같은 느낌이나 잘 짜여진 공연으로서의 느낌도 경우에 따라서는 위화감을 주기도 했다. 공연이 너무 매끄럽게 흘러가서,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지만 같이 호흡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이따금씩 받았다. 타일러는 세계 어느 곳에 가도 같은 모습일 것 같았다. 

공연 러닝타임이 약 80분 정도로 짧게 느껴졌던 것 역시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날 공연을 찾은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보답하는 마음에서라도 공연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몇개의 앵콜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사실 위에서 말한 아쉬움들은 정말 어떻게든 아쉬운 점을 찾아보려고 짜내고 짜내서 쓴 이야기일만큼 타일러의 공연은 시작부터 끝까지 매끄러웠다. 공연 자체도 만족스러웠고, 공연장도 훌륭했으며, 입장이나 진행에서도 큰 문제가 없었다. 부채로 대표될 수 있는 머천다이즈들도 관객들의 소유욕을 자극할 수 있게 훌륭하고 센스있게 제작되었다는 점도 소소하지만 즐거운 공연 경험을 제공하였다. 공연 홍보를 위해 기획사가 제작한 포스터, 프로모션 아이디어 등도 트랜드의 선봉에 서 있는 타일러의 공연 홍보답게 감각적이고 위트 있었다는 것 역시 이 공연의 완성도를 외적으로 높여 주었다.

공연 자체로도, 그리고 외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타일러의 무대는 앞으로 이루어질 많은 내한 공연의 비교 척도가 될 수 있을만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한편의 훌륭한 뮤지컬을 보고 난 뒤 집으로 향하는 많은 관객들의 표정은 밝았고, 기묘한 세계로의 여행은 즐거웠으며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언젠가 다시 한 번 그 기묘한 세계로 가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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