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사도: 왜 감정을 설명하려 하는가

2시간 내내 거의 계속 울었다. 부정할 수 없다. 눈물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누군들 이 비극을 보고 쉬이 눈물을 참을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 몇개월 전에 있었던 마크 로스코의 한국 전시를 생각했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너무나 훌륭했지만, 이와는 별개로 마크 로스코의 전시는 재앙에 가까웠다. 작품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는 작가의 성향과는 정 반대로 전시는 작품보다 이 작품을 설명하려는 텍스트가 더 많았고, 그 텍스트들도 어떤 고차원의 것이라기 보다는 SNS에서나 볼 법한 소위 ‘감성팔이’ 카피라이트들이 많아서 작품과 전시의 괴리는 매우 깊었다. (나는 듣지 않았지만) 배우 유지태의 목소리로 재생된 오디오 가이드는 관객들에게 ‘울어라! 이 설명을 듣고 울어라!’라고 채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곡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나누었던 대화도 떠올랐다. 나는 곡을 가사를 쓰기 전까지는 못쓰는 편이다. 즉, 가사를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화시키지 않으면 곡을 잘 쓰지 못한다. 나에겐 가사를 통한 구체화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고, 나는 ‘말하고자하는바’가 정해지지 않은 창작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와의 대화는 나의 이런 생각이 너무나 협의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부가 아니다. 언어는 내가 표현하고자하는 바를 전달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가장 직접적이어서 효과적이지만 그 때문에 어찌보면 가장 일차원 적인 수단일 수도 있다.

‘사도’가 딱 그러했다. 감정을 너무 직접적으로 언어로 표현했다. 영화는 소설이 아니다. 1 그 모든 것을 다 일일히 언어로 설명하고 전달할 이유가 없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 표정, 앵글, 음악 등 그 수많은 요소들을 놔두고 굳이 대사를 우겨넣어서 관객들에게 그들의 감정을 일일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사도’는 더욱 처절하게 아름다울 수 있었다. (관람등급을 의식하지 않고) 사도세자의 광기를 더욱 강하게 보여줄 수도 있었고, 영조와 사도세자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조그마한 숨소리와 발소리를 통해서 그들의 감정을 보다 더 강렬히 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그 모든 것을 대사로 덮어버리고 관객들에게 일일히 감정을 떠먹여주었다. 영리하지만 아름답지는 않았다.

사도_02

다시 한 번 말하지만, 2시간 내내 거의 계속 울었다. 하지만 감동받지는 못했다.

Notes:

  1. 소설도 대사로 모든 것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