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4] 배트맨:아캄나이트 ; 맞지 않는 옷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보고만 있어도 괴로운데 그런 옷을 입은 채로 직접 움직여야한다면 얼마나 더 불편하고 괴로운 일이 일어날까.

만약 초인적인 존재가 너무나도 쉽게 위기를 극복하고 하하호호 웃으며 모두가 행복해 하는 삶을 그리고자 했다면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상적 삶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텅 빈 도시와 그 위를 끊임없이 달리는 커다란 바퀴덩어리, 그리고 사람을 불편하고 귀찮게만 만드는 물음들까지도 말이다.

배트모빌이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배트모빌이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배트맨:아캄나이트(이하 “아캄나이트”)가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비극과 마주해야 했다.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고, 자아가 분리되었으며 환영을 보기도 하였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믿지 않고 스스로의 고집만으로 행동하여 그들을 실망시켰으며, 내 앞에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야 했고 일들을 어떻게든 해결되는 듯 했지만 상실과 슬픔은 언제나 함께였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그가, 그리고 우리가 느꼈을 감정을 함께 따라가기에는 입은 옷이 너무나도 일차원적이고 직선적이었다. 우리가 내내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뒤뚱거리며 걷거나 (날거나) 지나치게 커다랗고 투박한 기계를 타고 텅 빈 거리를 영혼없이 돌아다니는 비극의 주인공, 그의 뒷모습이었다. 우리는 그가 될 수 없었고 항상 어깨 너머의 그의 뒷모습을 3인칭으로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비극은 꽤나 아름다웠다. 조각난 자아와 끊임없이 마주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름다운 비극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이 그 아름다움을 너무나 빛 바래게 하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 비극으로 한 발 더 깊이 다가가지 못하고 계속 주변을 겉돌다가 끝을 마주할 뿐이었다.

끝이 보일 즈음 우리는 잠시 그 비극의 주인공이 직접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감정의 깊이를 함께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텅 빈 도시를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방법이 아니라 한단계 한단계 그와 함께 상황과 감정을 마주했다면 말이다.

잘 만든 이야기에는 그에 맞는 적합한 장르라는 옷이 필요하다. 아캄나이트가 입은 오픈월드라는 옷은 아마도 올해의 가장 안타까운 옷이 아닐까 싶다.

worst-batman-costume-troll
옷을 제대로 입어야 한다.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