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 17.04.14 Stockholm_Day5

반지하였기 때문이었는지, 왠지 모를 우울함과 건조함이 감돌았던 Karanplan의 호텔에서 나오는 날이었다. 조식을 먹고 느즈막히 체크아웃을 준비했다.

옮기자

나름 유명한 비르에르 얄 호텔이 목적지였다. 아직은 짐이 많질 않아서 호텔을 옮기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기존에 있던 숙소에서 버스로 한번에 갈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부담이 적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고 했더니 우리는 2박을 예약했음에도 예약이 1박만 되어있고 싱글베드로 예약이 되어있다고해서 당황스러웠다. 이메일 예약 바우처 등을 낑낑거리면서 찾아서 보여주고, 이름을 여러번 확인한 다음에서야 컨시어지에서 다른 사람이름을 착각하고 확인해준 것임을 알았다. 여권까지 보여주고 확인시켜줬는데 왜 헷갈리는지 잘 모르겠다.

미술관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본다.

짐을 대충 놔두고 현대미술관인 Moderna Museet으로 향했다. 부활절 주간이라서 다른 관광지나 상점이 대부분 닫아서인지 사람이 굉장히 많고 북적거렸다. 조금 스트레스가 올라왔다. 깔끔하게 잘 만들어져있는 외관에 비해서 뭔가 조금 정돈이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 예를 들면 박물관 규모가 작지 않은데도 락커가 많이 부족했고, 락커가 없어서 clarks에 옷을 맡기려고 했더니 사람이 없는 자율 운영이어서 도난에 대한 대비가 전혀되지 않는다던지(그만큼 안전한 도시인것일까?), 동선이 조금 꼬여있는 느낌을 주는 것 등 조금 어수선한 느낌이 강했다.

락커 앞에서 대기를 타다가 운좋게 락커에 짐을 보관하고 전시를 둘러보았다. 여러 전시들이 있었는데, 먼저 인테리어의 북유럽 답게 가구 및 건물 전시가 있기에 그 전시부터 시작했다.

유명한(난 잘 모르지만) Joseph Frank의 건설, 가구 디자인이 많이 전시되어있었는데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질 않았다. 힘들고 지쳐서 눈에 잘 들어오질 않고 굉장히 붕 뜬 느낌이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여서인지, 미술관의 어수선한 느낌에 적응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내 체력과 집중력이 벌써 고갈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래가지고 앞으로 여행을 얼마나 제대로 할 수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이것이 체력적인 문제든 정신적인 문제든, 여행 초반부터 이렇게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이런 걱정을 안고 다음 전시관으로 향했는데, 다행히도 조금은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앞 전시관에서 흐트러진 내 주된 집중력이 내가 모르는 분야와 크게 관심없는 것들로 인한 것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행위예술가인 Marina Abramović의 기획전이 바로 그 전시였다.

처음에는 이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몰랐는데, 전시를 보다보니까 몇년전에 페북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다.

 

지금은 헤어진 오래된 동료이자 연인이 예고 없이 나타나 서로 바라보기만 한 이 영상은, 서로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대박이라며 페북에서 공유되었다. 전시 막바지에 이 작품도 전시되어있어서 나는 그제서야 아 이 영상의 주인공이 마리나였구나 라는걸 알 수 있었다.

저 영상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전시를 다 돌아보니 저 것은 마리나가 보여준 수많은 것들 중에 진짜 작은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그녀가 젊은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보여준 많은 것들은 저 영상처럼 따뜻하고, 애절하며 아름답기보다는 처절하고, 광기어리며 너무 불편해서 외면하고 싶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불편해서 얼굴을 찡그리게 되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그렇게 한계로 내몰고,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입히면서 퍼포먼스를 하는 이유를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지와 이것저것 이야기 하면서 참을성있게 작품들을 쭉 보다보니, 아주 조금이나마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했다.

전시 외적으로 특이했던 점은, 전시가 성기, 뼈, 해골, 칼, 상처 등 성인이 보기에도 약간 불편할 수 있는 소재들을 굉장히 많이 다루고 있음에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관람하는 부모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런 소재들을 폭력이나 성적인 요소로 판단하지 않고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르쳐주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마리나 기획전을 보고나서 상설전시관으로 향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집중력있게 보질 못했다. 너무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기도 했고 정신적으로도 집중이 되질 않았다. 2년전에 유럽에 갔을 때는 하루의 일정을 보통 “미술관 한두곳 + 미술관 주변 힙한 거리 구경 + 괜찮은 상점에서 쇼핑”으로 구성하여 돌아다니는 것이 나에게 맞는 여행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나오니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예전 같은 조합으로 여행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단순히 체력문제만은 아니었다. 여행을 나와서 며칠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번 여행을 나와서 내가 어떻게 여행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고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근 2년간 많은 부분에서 감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주변과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 극도로 낮아졌고 나태해졌으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게으르다. 추한 늙음으로 가는 기찻길에 올라탄 것 같아서 너무나도 불쾌한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을 가진 채로 허기는 해결해야하기에 미술관 내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부활절 브런치라는 뷔페는 보기에는 그럴듯 했으나 (대부분의 스톡홀름 음식들이 그러하듯이) 조금 비리고 짜서 우리가 먹기에 그렇게 좋은 음식들은 아니었다. (바게뜨가 가장 맛이 좋았다.)

보기엔 그럴듯하다. (다시보니 보기에도 그럴듯하지 않은거 같기도하고…)

앉아서 이런저런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다보니 오후6시가 지날 때까지 식당에 앉아있었다. 6시간 넘게 이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우리 여행 중에 이렇게 길게 미술관에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미술관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날이 너무 춥고 힘들어서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추운) 밖으로 나가서 유명한 크라운다리를 건너서 걸어갔다. 수지가 감라스탄 지역이 유명하다면서 한번쯤 가보는 것이 어떻냐고 했다. 물론 나는 너무 추워서 가고 싶지 않았다.

날씨는 춥고, 전시를 오래보았더니 힘들었으며 뭔가 유명한 관광지를 가기에는 정신적으로 너무 지칠것 같아서 나는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수지는 가고 싶어했다. 이 때문에 조금 언쟁이 있었고, 결국 가긴 했으나 내가 너무 시큰둥하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분위기는 점점 안 좋아졌다.

수지가 감라스탄을 가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그곳이 유명한 장소여서가 아니었다. 수지 역시 이 여행에서 자신이 가져야하는 스탠스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명한 곳이라도 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힙한 거리나 상점을 돌아다녀도 서울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별반 차이를 못느끼겠고, 미술관에 가도 크게 감명이 없고, 좋은 카페나 식당을 가도 뭔가 특별한 장소에 왔다는 느낌을 못느끼는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에 수지는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했다. 무언가 다른 체험을 하고 싶었으나 거리, 상점, 미술관 등만으로는 그 다름을 채울 수 없었다.

수지 역시 나와 비슷하게 이 여행에서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나나 수지 모두 그 어려움이 쉽게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유명한 감라스탄의 건물이라는데…

오늘도 역시 여행의 찝찝함을 마음에 둔 채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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