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 17.04.22 Berlin_Day1

코펜하겐에서 베를린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비행기를 선택했다. 테겔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은 마땅한 것이 없어서 쇠네펠트 공항으로 가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러 가서 게이트 앞에서 줄을 섰는데, 왠지 모르게 저~ 뒷쪽에 버클리라고 쓰여있는 후드티를 입고 있는 한 청년이 눈에 띄였다. 친구 H가 예전에 교환학생을 갔었던 조지아텍에서 티셔츠 등을 사와서 입고 다니던 것이 생각나서였는지 버클리라고 쓰여있는 옷을 입고 있는 그 청년이 그냥 눈에 들어왔나보다.

일단 들어가서 창가부터 수지-나 순으로 비행기 좌석에 앉았는데, 조금 이따가 어떤 사람이 우리 옆으로 오더니 어눌한 한국말로 “한국사람이세요?”라고 물었다. 화들짝 놀라서 누군가 싶어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더니 아까 보았던 버클리 옷을 입은 청년이었다. 이 친구는 동양계도 아니고 흑인이었는데, 한국말로 우리한테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아서 꽤나 당황스러웠다.

그 친구는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 동그란 안경을 보고 한국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서 그렇게 물어봤다고 했다. 학교에 한국인 중국인 등 동양친구도 많이 있고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난 서양 문화에 관심이 있는데 영어도 잘 못하는데 이 친구는 도대체 뭘까…)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화을 시작한 이 친구 (이름을 물어봤던가.. 기억이 잘 안난다. 앞으로 B라고 부르겠다.)는 말이 정말 엄청나게 많았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는데, 비행하는 1시간 내내 말이 끊이지 않았다. (버클리의 B 이자 Big Mouth의 B라 할 수 있겠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너무 흔들려서 무서운데 B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했고, 우리는 예의상 계속 말을 이어가며 집중하다보니 멀미까지 했지만 B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래도 엄청 짜증나거나 불편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B가 굉장히 흥미로운 말들을 했기 때문이다.

B는 굉장히 너드 같은 느낌을 팍팍 풍기는 사람이었지만, (많은 너드들이 그러하듯이) 굉장히 순수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고, 일종의 천재성을 뿜어내기도 했다. 그가 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B는 버클리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얼마전에 졸업했으며, 사람들에게 수화로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이 풀타임 잡은 아니고 그냥 알바 같은 식으로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언어를 일정 기간동안 마스터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가 잘할 수 있는 언어를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영어-영어수화-독일어-스페인어-일본어-한국어”라고 했다. (이 대화들은 80~90%정도 한국어로 그리고 나머지 일부 한국말로 표현이 어려운 부분만 영어로 이루어졌다.) 영어수화가 2번째로 잘하는 언어라는게 일단 신기…

그리고 한국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요새 아이돌 나오는 케이팝은 싫다고 했다. 대신 한국인디를 좋아하고 드렁큰타이거, 윤미래, 브로콜리너마저 등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서양사람들한테 참 듣기 어려운 뮤지션들인거 같은데…) 한국 인디락 중에서 좋은 뮤지션이 있냐고 해서 아이폰을 꺼내 내가 가진 노래들을 뒤적거리며 브로콜리너마저와 비슷한 가수들을 알려주었는데, 그는 그 뮤지션들을 나중에 유투브에서 찾아볼거라며 발음나는대로 핸드폰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가 드렁큰타이거를 좋아한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님을 명확히 알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지역 중 서울 말고 어디를 아는가에 대해서 대화가 시작되었을때 그는 서울 말고도 동두천을 안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미국사람들이 그렇듯이 카투사 때문에 아는가 싶어서 아 거기에 미군기지가 있는데 그거 때문에 아는거냐고 물어보았더니 그게 아니라 드렁큰타이거의 고향이라서 안다고 했다… 드렁큰타이거의 고향이 동두천이라… 나도 몰랐던 건데… 대단했다.

그리고 B가 베를린으로 가는 이유 역시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이 이야기는 B가 몇개월전에 독일 여행을 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는 몇개월전에 친구를 만나러 독일에 왔다가 그 친구의 일정이 꼬이게 되면서 혼자 독일 기차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취미이자 특기 중 하나는 양손으로 한번에 드로잉을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기차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꽤 많이 양손으로 그렸다고 했다. 기차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을 그릴수 있는 스케치북이 마지막 한 장 남았을 때 한 어린 소녀가 돌아다니길래 그 아이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가 양손으로 그리는 모습을 보고 엄청 신기해하며 대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독일계 파워툴을 만드는 회사인 Hilti의 고위 임원(무슨 임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사 채용에 어느정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고 했다)이었으며, B와 이야기하면서 그에게 흥미를 느껴 한번 회사에 지원서를 내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B는 입사지원서를 내고 2~3번 면접을 보았고, 이제 최종 계약을 위한 최종 인터뷰를 보러 뮌헨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만약 합격하면 그는 공구 등에 들어갈 IoT나 인공지능 등과 관계된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게 무슨 드라마같은 일이여….

드라마 같은 1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드디어 베를린에 도착했는데, 엄청난 멀미에 시달렸다. 쇠뇌펠트 공항에는 와본적이 없어서 시내까지 어떻게 이동해야할지 감이 안왔다. 수지의 멀미가 심하기도 하고 시내로 가는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서 그냥 택시를 탔는데, 다행히 호텔까지는 40유로가 조금 안나왔다.

너무 피곤하고 컨디션도 안좋아서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짐도 안풀고 한 2시간 정도 폭풍 낮잠시간을 가졌다.

낮잠 후에 호텔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가서 여행계획을 이제서야 세우기 시작했다. 카페에서는 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으로만 결제 가능했다. 아 맞다. 베를린에서 식당들은 대부분 현금만 받았었지… 불현듯 생각이 났다.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까 밖에서 우박? 비? 가 내리기 시작했다. 베를린도 날씨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도착하자마자 슬퍼졌다.

수지의 아일랜드친구 S와 그의 여자친구 N도 휴가 및 우리를 만날겸 해서 런던에서 베를린으로 3~4일 정도 여행을 온다고 했기에, 오늘 만나서 같이 저녁도 먹고 맥주도 한잔 하기로 했다.

대중교통에서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여전했다.

한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주변을 조금 둘러보았다. 가는 길에 갑작스레 비가 또 와서 우비를 챙겨입고 돌아다녔다. 베를린 역시 쌀쌀하고 비가 많이 오는 도시였다.

S와 그의 여자친구 N을 만났다. S는 우리의 결혼식 참석차 서울에 왔을 때 만났었고, N은 이번에 처음 만나는 것이었는데, N은 타이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완전히 미국식 네이티브 같았다. 둘 다 약간 너드같은 면이 있지만 (비행기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쾌활하고 착한 친구들이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꽤나 좋은 시간이었다.

N이 광장 근처에 있는 식당을 하나 검색해서 그 곳에서 식사와 맥주를 한 번에 해치웠다. 특히 맥주 셀렉션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여기가 독일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것이 맥주 종류다!

맥주는 맛있었는데, 그와는 별개로 내가 식사로 시킨 Smoked of the Day는 뭐랄까.. 풀드포크버거 같은 음식이었는데, 좀 퍽퍽하고… 맛이 좋다고 하긴 애매했다… 아, 역시 독일 음식은 그렇게 맛있진 않지…

근황, 사는 이야기, 우리가 하고 있는 여행이야기 등 이런저런 주제로 시간을 보내고나서 서로의 베를린 여행 계획을 맞춰보고 하루쯤은 같이 만나서 다시 한 번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하고 헤어졌다.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인 런던에서도 또 볼테니까 계속 붙어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돌아와서 호텔 바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며 수지가 여행에서 느꼈던 점을 정리했다. 그 동안 나는 밀렸던 여행기를 보강하였고 둘 다 여행에서 경험한 것들을 정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번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가 조금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계획 없이 나와서인지 어떤 것을 보고 싶고 무슨 경험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가 않아서 조바심만 들고 정작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을 하는 여행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어떤 의문점과 불안감을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서로 감정적으로 부딪히고 불편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번 여행에서 느꼈던 많은 감정들에 대한 정리, 혹은 그 감정의 첫 씨앗이 이 날의 대화에서 나왔던 것 아닐까 싶다.

[두번째 유럽] 여행을 시작하며, 끝내며

앞으로의 여행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명확한 다짐과 계획을 세우고 이날이 마무리 되었으면 아름다운 마무리였겠지만, 사실 그냥 서로의 감정 현 상태에 대해서만 이야기되었을 뿐 어찌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은 상태로 하루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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