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 17.04.25 Berlin_Day4

심적으로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은 날이었다. 어제 나누었던 이야기 때문인지 여행의 방향과 추진력을 다 잃어버린듯한 느낌이라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그런 황망한 기분이었다. 가기로 계획해 놓은 곳들은 있는데, 가야할지 말아야할지도 확신이 들질 않았다. 가만히 계속 있는다고 해도 딱히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느즈막히 일어나서 미적미적 준비하고 흐린 날씨의 거리로 나갔다.

유대인 박물관은 예전에 왔을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상설 전시는 유대인의 역사에 큰 관심이 없다면 별 흥미가 없을만한 것들이 많았고, 유명한 철판 전시관으로 가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나왔다.

중간에 희한한 자판기가 있었는데 잔돈이 없어서 뽑아보질 못했다.

유대인 전시관 옆에 2년 전에 공사중이었던 현대미술관이 오픈했길래 얼씨구나 하고 들렀는데, 오늘은 휴관일이라고 했다. 이 미술관은 나와는 인연이 없는 곳인가 보다.

이스트 베를린 쪽을 가보고 싶어서 크로이츠베르그 지역으로 향했다. 이스트 베를린 지역이 힙한 동네가 많다고 하는데, 아직도 나는 아직도 어디가 힙한 이스트 베를린인지 모르겠다. Companion 카페나 Voo 같은 편집샵 + 카페 컨셉의 장소들이 몇몇 있었는데, 간단한 샌드위치 같은 것이라도 있어서 배를 채울 수 있었으면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곳들은 케익이나 쿠키같은 정~말 간단한 음식들만 팔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도 제대로 된 음식을 파는 곳을 찾질 못해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거나 대충 먹는게 마음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둘다 짜증이 머리 끝까지 올라올 때쯤 길건너에 요상하게 생긴 음식점이 보였다. 밖에 놓여있는 메뉴를 보았더니 음식 종류가 굉장히 많았고 어떤 음식인지 감이 잘 오질 않았다.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보았다.

일단 들어왔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페르시아 음식이었다. 페르시아 음식은 먹어본적이  없어서 불안감이 들긴 했으나, 나가서 다른 장소를 찾아 헤멜 자신이 없어서 그냥 시켜보았다. 음식의 비주얼이 그 불안감을 해소해주진 못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으로 한입 먹어보았다.

예상외로 음식은 굉장히 맛이 좋았다. 페르시아 음식은 그리스음식과 인도음식의 맛이 섞여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10~15년 쯤에 우리나라에 정통 인도 레스토랑이 인기가 있었고, 한 5년전까지 그리스 음식도 꽤 유명해졌던 걸 생각해보면 다음 유행은 페르시아 음식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깐 해보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음식을 먹으니 컨디션이 조금 회복되어서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거리, 그리고 가게들을 구경했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인

한 과일주스가게로 들어가서 베를린에서의 나머지 계획과 베를린 이후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매번 계획을 세운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제대로 결정된 것은 없는지 의문이다…)

수지가 예전에 브뤼셀 근처의 겐트라는 도시를 간 적이 있는데, 거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브뤼셀이나 겐트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추운 것 때문에 힘들어 했으므로 조금 따뜻한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휴양지 같은 곳을 가는 것도 이야기해보았다. 이런 저런 장소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지만 완전 새로운 곳을 가는 것은 결국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고,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베를린을 천천히 돌아보고 원래 계획했던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사실 우리가 원래 생각했던 것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 잡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주스집에서 나오니 날씨도 좋아진 것이 뭔가 개운했다.

노이쾰른 쪽으로 좀 더 들어가서 구경을 해보려고 버스를 타고 쭉 이동했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느낌이 좋았다. 적당한 거리를 가서 버스를 타고 온 길을 거꾸로 걸어와보았다. 중간중간 여러 가게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사기 적당한 물건을 팔진 않았다. 그래도 거리의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걸어오는 길에 괜찮은 카페라고 미리 찾아보았던 Five Elephant 카페에 들려서 잠시 쉬었다.

카페에 앉아서 사진을 찍으면서 얼굴에 너무 점이 많아서 좀 빼야겠다는 (정말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다. 어제 강력한 호객 행위와 함께 샀던 음악회를 보기 위해 다시 도시 중심으로 왔다. 생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배가 고파서 KFC에서 간단하게 먹고 교회로 갔다.

KFC

음악회는 나쁘지 않았지만 기대했던 것 만큼은 좋지 않았다. 프라하에서 봤던 공연은 교회의 천고가 높아서였는지 소리가 크게 울려서 적은 악기 구성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느낌이 들었던 반면,카이저 빌헬름 교회에서는 그 정도로 소리가 울리질 않아서 소리가 좀 빈약하고 앞쪽에서만 맴도는 느낌이었다. 그게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걸 다 상쇄시킬만큼 엄청난 것은 오르간 솔로였다. 거대한 오르간 솔로는 압도적이었다.

음악 감상합니다.

공연을 보다가 느낀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필 받아서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찾아보고 예매까지 해버렸다. 조금 일찍 예매했었다면 저렴한 좌석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급박하게 하니 당연히 저렴한 좌석은 없었고, 그냥 비싼 좌석을 질러버렸다. 날아오르라 내 퇴직금이여…

나오니 하늘과 구름이 예뻤다.

공연을 보고나니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는데, 좀처럼 눈에 띄질 않았다. 여기저기 찾다가 어쩔 수 없이 아까 저녁을 먹었던 KFC로 가서 화장실만 낼름 가려는데, 화장실 앞에 한 청년이 앉아서 돈을 받고 있었다. 역시 유럽은 돈내고 화장실써야지 하고 돈을 내고 들어갔는데, 알고보니 아무런 허가도 받지 않고 그냥 그 앞에 앉아서 돈받는 친구였다. 완전 봉이 김선달이랄까… 수지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돈을 안내고 들어갔다. 역시 유럽 경험자. 그래도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거스름돈도 잘 챙겨주고 친절함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낮에 이야기했던대로 베를린에서 좀 더 머물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숙소가 오늘까지밖에 예약에 되어있질 않아서 리셉션에 가서 혹시 며칠 더 예약이 가능할지 물어봤더니 (예상했던대로) 방이 꽉차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부랴부랴 방으로 올라가서 인터넷으로  괜찮은 호텔이 어디 있을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베를린 도착하기 전에는 1박에 7~8만원 정도하는 3~4성 호텔들도 많았는데, 그런 호텔은 이제 하나도 남질 않고 비싼 숙소들만 있었다. 여러분 즉흥 여행이 이렇게 위험한 겁니다…

노이쾰른 근처에 nhow라는 호텔이 특이해보여서 일단 예약을 했다. 베를린 호텔 예약을 끝내고 이제 다음 목적지인 암스테르담 호텔을 찾아보았는데, 이때부터 엄청난 대혼란이 시작되었다. 5월 1일즈음에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별 시덥지 않은 호텔이나 호스텔이 1박에 300유로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서 둘 다 패닉상태였다. 명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4월 27일이 King’s Day라는 큰 공휴일이고 그 때부터 이어서 5월 초까지 계속 축제주간이어서 그런것 같다.

그 돈을 주고는 도저히 암스테르담에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다른 대안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 계획을 그만 세울 수 있을까. 이런저런 도시들이 후보로 나왔지만 마땅히 확 끌리는 곳은 없었다. 결국 예전에 수지가 좋은 기억이 있었던 벨기에 겐트로 가기로 결정했다. 겐트에 있는 숙소를 보다보니까 경치가 좋은 곳에 있는 캐러밴에서 숙박할 수 있는 AirBnB가 있어서 마음을 굳혔다. 도시여행에 지친 우리에게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겐트로는 바로 가는 교통편이 없었기 때문에 베를린에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에서 겐트로 가는 기차까지 우여곡절끝에 예매하고 새벽 늦게서야 잘 수 있었다. 어서 빨리 이 여행에 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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