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 17.04.30 Ghent_Day2

느즈막히 일어나서 어제 사온 음식들을 주섬주섬 늘어놓았다. 밖에서 먹을까 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아쉽게도 어려울 것 같았다. Camper안의 테이블에 음식들을 놔두고 먹었는데, 대부분의 음식들이 맛이 별로 없었다. 대실패였다. 지금까지 유럽여행 내내 식료품점이나 마트에서 산 음식들은 대부분 실패한 것 같다.

밖에 날씨를 보니 바람은 좀 불었지만 전반적인 온도 등은 정말 좋았다. 지금까지의 여행중에 가장 따뜻한 날씨였던 것 같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우리의 외관은 좋아지지 않았다. 머리를 못 감을 것을 대비해서 사온 드라이 샴푸는 그다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는 떡이 지기 시작했고, 얼굴은 팅팅 부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겠는가, 날이 좋은데 말이지.

일단 조금은 사람다운 몰골로 만들고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서 어제 내렸던 기차역 안의 화장실을 들릴려고 했는데, 충격적이게도 기차역의 화장실이 잠겨있었다. 이 때부터 조금 패닉이 왔는데, 핸드폰에 화장실 찾기 앱 등을 설치해서 허둥지둥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pee in the nature를 아침에 수행하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시내에서 난감해져버렸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겨우 한 장소를 찾았는데, 여긴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남성 전용 공중화장실인데, 차로 비유하자면 완전 오픈형 컨버터블 차 같은 곳이었다. 벨기에의 화장실 문화는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래도 급하니까 이런 곳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창피함보다 훨씬 컸다. 어차피 가릴 곳은 다 가리니까 막상 문제될 것도 없어보이고…

위기를 극복하고 중심가로 들어가서 두리번거리다보니 잔디밭이 있길래 얼씨구나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근처 슈퍼마켓에서 사온 음료수를 잔디밭에 앉아서 마시며 광합성을 하고 그냥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 우리가 꿈꿨던 유럽여행의 모습인데, 왜 여행 몇 주만에 만끽하게 된 걸까…

앉아있는 동안 한 청년이 우리 뒤에 앉아서 통기타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노트북에 뭘 적으면서 연주하고 생각하고 이러는거 보니 돈을 벌기위한 버스킹을 나온건 아니고 작곡하면서 노래도 하고 그러려고 나온 것 같았다. 평이한 코드의 기타반주와 노래를 들으면서 요새 같은 세상에 저런 노래 만들면 굶어죽기 딱 좋겠다는 슬픈 생각을 했다.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지루해져서 시내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예전에 수지가 왔을 때 한적한 도시였고, 동양인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잘 안알려진 곳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고, 한국사람을 포함해서 동양인도 많이 보여서 수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해 했다. 암스테르담이 축제주간이었던 것 처럼 5월 1일 전후가 유럽사람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나는 주간이라 그런 것 같다는 우리 나름의 추측을 해보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괜찮은 곳들이나 가게가 뭐가 있는지 기웃거려보았는데,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게가 문을 닫았거나 너무 사람이 많거나 하는 등 뭔지 모를 불편함과 위화감이 많이 들었다. 도심에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 들린 맥도날드 역시 사람이 많았고, 돈을 내고 화장실을 들어가는 도중에 한 할머니가 화장실 앞에서 돈받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돈을 냈는데도 왜 또 돈을 내고 화장실에 들어가야하냐고 화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 역시 왠지 불편하고 위화감이 들었다.

맥도날드 앞 정류장 유리가 박살났다. (위에 말한 할머니가 박살낸건 아니다.)

표류하듯이 돌아다니다가 벨기에는 감자튀김이 유명하대서 하나 사서 먹어보기도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녔음에도 이 감자튀김을 사서 먹은 곳은? 바로 처음에 갔었던 잔디밭이었다. 우리 유럽여행은 반복과 회귀의 여행인걸까. 사실 감자튀김은 특별할 것 별로 없었다.

놀랍게도 낮에 있었던 곳과 같은 잔디밭

결국 저녁이나 먹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고, 낮에 눈여겨 봐뒀던 푸드홀로 향했다. 이 푸드홀은 특이하게 교회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름도 Holy Food Market이었다. (컨셉질..)

사람이 굉장히 많아서 조금 정신없고 힘들긴 했으나 여기서 시켜먹은 피자는 굉장히 맛이 좋았다. 이 때문에 사람이 좀 많아서 힘들었던 것조차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좋은 기억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언제나 피자를 먹는다.

푸드홀 이름부터 시작된 컨셉질은 여러 식당의 메뉴에서도 이어져있었는데, 살짝 너무 과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메뉴 이름이 예를 들자면 Share the Sins 라던지, Greed Burger이런 식이었는데 재미있다고 해야할지 과하다고 해야할지 살짝 애매했다.

피자 덕분에 행복해진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서 숙소 근처의 길을 따라 짧은 산책을 했다.

산책을 나가는 길에 특이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실 낮에 나오는길에 보았는지, 저녁에 보았는지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하다. 일단 그냥 저녁에 보았다고 하자.) 우리가 묵는 Camper의 옆길로 클래식 카들이 몇대가 계속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클래식 카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죄다 운전자 1명 그리고 그 옆에 지도 같은 것을 들고 있는 보조 1명 이렇게 구성되어있었는데, 그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팀을 이루어서 지도만 보고 특정한 곳을 찾아가는 이벤트같은 것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었다. 한적한 곳에서 클래식 카를 타고 그런 액티비티를 하는게 귀엽게 느껴졌다.

숙소 주변은 모두 거주지역이었는데, 깔끔한 단독주택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계속 이어져있었다. 아주 조용하고 한적했다. 좋아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심심하게 느껴졌는데, 내가 원하는 삶과 거주의 모습이 도심의 모습일까 이런 모습일까 조금 헛갈렸다. 나는 항상 대도시에서 살아갈 것이고 그걸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한적하고 어떻게 보면 심심한 느낌을 가지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어떤 방식이 가장 나에게 맞는 것인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고 더욱더 확신이 없어졌다.

이런저런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하고 다시 Camper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무한도전을 다운받아 보고, 짐을 정리한 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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