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You’ve Got Mail; I’ve got mail

타닥타닥.

나는 사실 타이핑 소리가 좋다. 슥삭거리는 연필의 소리보다 장작에 불이 붙은 것 같은 소리를 내는 컴퓨터의 자판이 좋다. 글을 못 씀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쓰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는 어쩌면 끊기지 않는 자연스러운 타이핑 소리를 계속 듣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 언젠가는 중고 타자기를 사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타자기의 타자 소리와 함께 글을 쓰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내가 아직까지도 글을 잘 못 쓰는건 인터넷에서 찾아본 타자기의 몸값에 나의 글쓰기 실력 향상 기회를 박탈당하였기 때문이리라.

슥삭거리는 연필 소리가 싫지는 않다. 다만, 소리가 떠나고 난 자리에 머문 나의 글씨가 싫을 뿐이다. 컴퓨터의 자판은 그렇지 않다. 몇번의 타이핑 후에 남은 텍스트는 조금만 그럴듯하게 다듬어주면 정말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다.

언젠가 내가 작성한 100페이지 가량의 보고서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이걸 내가 만들었다니. 만약 손으로 쓴 100페이지의 글이었다면, 아마 첫째장의 3번째 문단쯤에서 읽기를 그만두고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픈 충동을 느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진지한 편지를 이메일로 보내기 위해 심사숙고하여 자판을 두드린 기억은 거의 없다. 애인에게 손편지를 쓰기에는 나의 로맨틱함은 사막과 같이 말라 있었고, 글씨 역시 보고 감동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메일을 쓴다? 나에게는 정말 우스운 행동이었다. 사회의 통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좋아하던 타이핑은 그저 자기 위안과 자기 표출을 위한 도구로서 온갖 현학적인 표현과 은유와 함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나 사용되었다. 사실, 나는 보다 길게 타이핑 해보고 싶었다. 내 글씨는 내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내 타이핑은 내 생각을 따라갔다. 아니 가끔은 앞질러가기도 했다. 1 그 앞질러간 텍스트는 뭔가 너무 그럴듯해 보였다. 짧은 타이핑에 익숙해져간 나는 점점 더 글을 쓸줄 모르는 존재가 되어갔다. 그저 누가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듯 했다. 나는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다.

정리된 이메일 보관함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든다. 날짜순으로 정리해보고 보낸사람순으로 정리해보고, 특정한 단어로도 필터링해서 검색하고 있자면, 나라는 존재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상자안에 보관되어있는 손편지들을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언젠가 여행을 떠난 그가 핸드폰 메세지로 하루하루의 일과를 알려오는 것이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싫었다. 그의 하루, 일주일, 한달, 한분기를 메일로 정리해서 받고 싶었다. ‘나는 지금 수영하고 있어’가 아닌 ‘일주일 전에 나는 해변에서 수영을 했어.’라는 말이, 아니 텍스트가 보고 싶었다. 그가 했던 말을 찾기 위해 바보처럼 핸드폰 화면을 몇번이고 손가락으로 휘젓고 싶지 않았다. 나는 메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 채팅 화면 안에 있는 숫자1이 아닌 받은 편지함 옆의 숫자1을 보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이메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도착음이 울렸다.

 

Notes:

  1.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_신경숙’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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